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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시빌워: 분열의 시대> 영화 리뷰

by 마치버거 2025. 3. 3.

 

1.  줄거리

Welcome to The Front Line!

캘리포니아 주와 텍사스 주를 주축으로 한 서부군(Western Forces, WF)과 나머지 19주가 뭉친 '플로리다 동맹'(Florida Alliance, FA)의 분리독립으로 내전(Civil War)이 벌어진 가상의 미국을 배경으로 종군 기자들의 행보를 담은 로드 트립 형식의 전쟁 영화이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단순한 전쟁 영화가 아니라, 미디어가 폭력을 어떻게 기록하고 소비하는지를 성찰하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서사가 종군기자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주인공 베테랑 종군기자 '리(커스틴 던스트)'는 새내기 제시에게 다음과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저 기록만 한다. 다른 사람들이 질문할 수 있도록 

 

타국 내전 상황을 밀도있게 있는 그대로 전해 온 베테랑 기자 리는 자국의 내전 상황도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기록하고자 한다. 그러나 내란죄를 일으킨 대통령을 인터뷰하러 가는 여정에서 양 극단에 선 사람들의 광기 속에 처참하게 파괴된 자국의 모습과 동료들의 죽음 속에서 감정의 동요가 생긴다. 영화는 마치 타인의 고통을 직시하던 한 인간이 자신이 그런 상황에 놓여있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 상황을 이성적으로 직시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난 내 조국에게 전쟁을 보도해주는 것이 아니라 경고하고 있었다. 그냥 하지 말라고." (영화 속 리의 대사)

 

누구보다 전쟁의 처참함을 잘 알기에 자신이 그동안 보도해 온 수많은 전쟁 사진들에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일까란 회의감이 들었을 것이다. 여정이 지속되면서 그녀의 무력감도 깊어져 갔다. 그러나 시종일관 건조한 모습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리가 잠깐씩 감정을 드러내는 때는 종군기자를 꿈꾸는 새내기 제시와 함께 일 때이다. 워싱턴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그녀가 종군기자로 성장하는 모습은 리에게 끝까지 상황을 직시하게 만드는 기제이기도 하다. 

 

영화 속 새내기 종군기자 '제시'

 


2. 타인의 고통

 

영화를 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책이 하나 있다. 바로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 Regarding the Pain Of Others>이다.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전쟁 사진과 영상이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분석하며,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탐구한 책이다.

 

“연민은 쉽사리 우리의 무능력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까지 증명해 주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니까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극복하고, 잔혹한 이미지를 보고 가지게 된 두려움을 극복해 우리의 무감각을 떨쳐내야 한다"고 손택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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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시빌 워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영화적으로 구현하며, 전쟁을 기록하는 기자들의 시선을 통해 손택의 핵심 개념들을 반영한다.

  • 고통의 이미지와 감각의 마비
    • 영화 속 기자들은 참혹한 전쟁의 현장을 촬영하며, 손택이 지적한 ‘반복된 이미지 소비가 감각을 마비시킨다’는 문제를 몸소 체험한다. 전쟁이 지속될수록 잔혹한 장면들은 일상이 되어가고, 관객 역시 점차 무뎌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객관성과 윤리적 딜레마
    • 손택은 전쟁 사진이 ‘진실을 기록하는 것인지, 아니면 소비를 위한 이미지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영화 속 기자들도 같은 질문에 부딪힌다. 그들이 촬영하는 영상은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이 과정이 또 다른 형태의 착취가 될 수도 있다는 고민이 계속된다.
  • 고통을 바라보는 태도
    • 영화는 기자들이 전쟁의 현실을 목격하며 감정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린다. 손택이 강조했던 ‘고통을 소비하는 태도’를 영화 속 인물들은 스스로 반성하며,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어떠한 책임을 수반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과 연결해 보면, 이 영화는 단순한 전쟁의 재현이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철학적 탐구로 다가온다.

 

* 영어동사 ‘shot’은 ‘사진을 찍다’와 ‘총을 쏘다’ 두 가지 뜻을 모두 갖고 있다. 손택은 <사진에 관하여 On Photography 1977> 제1부에서 이점에 착안해 사진을 찍는 행위의 ‘약탈적’ 속성을 이야기했다.

 

 

3. 여전히 유효한 '시빌워'

절묘한 타이밍이라고 이야기하기 슬프게도 영화 개봉과 한국의 국내 정세 상황이 딱 맞아떨어졌다.  윤석렬(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잠시 동안 내전의 위기에 놓였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상황으로 다가온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적 상황이라기보다 

'와... 저럴 뻔했네...' 라며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다. 내전은 저 먼나라의 이야기이며 CNN을 통해서만 보았을 법 한데 그 상황이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벌어질 뻔했다는(사실 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한국에서도 벌어졌던 상황이지만) 사실은 영화에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What Kind of an American Are You? (당신은 어느쪽 미국인인가?) 

이 대사는 'American' 단어를 빼면 어느 나라에서든 언제나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타인의 고통을 연민으로 바라보다 어느새 그것이 자신의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메인 포스터

 

 

 

 

시빌 워: 분열의 시대 (Civil War, 2024)

  • 감독: 알렉스 갈랜드 (Alex Garland)
  • 출연: 커스틴 던스트, 와그너 모라, 스티븐 맥킨리 헨더슨 외
  • 장르: 드라마, 전쟁, 스릴러
  • 러닝타임 : 109분
  • 개봉: 2024년
  • 상영등급 : 15세 이상
  • 제작사 : A24